11월2일(토요일) - 십자가의 성도(마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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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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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루어갑니다. 특히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성경에서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로서 대속의 사역을 이루어간 것은 첫째 아담이 범한 죄를 대속하기 위한 완전한 아담의 모습이었습니다. 구원은 오직! 첫째 아담의 죄를 완전하게 대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룬 대속으로 말미암아 ‘성도(그리스도인)’가 되었습니다. ‘성전’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 어떤 십자가의 성도로 자신의 모습을 세워 나가야 할까요?

(1) 세상의 능력과 눈에 보이는 판단을 쫓아 신앙하는 우상적이며, 세속적인 요소를 떨쳐버리고 모든 것을 다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아래로 모여들기를 힘쓰는 십자가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헤롯 성전’이라 불러졌으며, 이 ‘성전’은 B.C. 960년에 세워졌던 ‘솔로몬 성전’과 B.C. 516년에 재건하였던 ‘스룹바벨 성전’에 비해 그 규모와 화려함은 최고에 달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3번째 건축되었던 ‘성전’이라 하여 ‘제3 성전’으로 불러지기도 한 ‘헤롯 성전’은 그 시작이 B.C. 20년경에 착공되어, A.D. 64년에 완공이 됩니다. (요 2:20)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무려 8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세워지고, 보완되어졌던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나오셔서 제자들에게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인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성전’에 대한 본질을 바르게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전’은 자신들의 가치와 근거를 드러내고, 그 건물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통해 제자들은 먼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선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볼 때, 바리새인들과 타락한 제사장들이 움직이고 있는 ‘성전’은 신앙을 팔아먹는 매매의 장소였으며, 하나님을 향한 본질을 무너뜨리는 장소였습니다. 세상의 능력과 눈에 보이는 판단을 쫓아 신앙하는 예수님 당시의 ‘성전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자랑삼는’ 세속적인 요소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나의 존재를 가름할 수 없다는 십자가의 고백적인 신앙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2) 무너질 형식과 방법을 따르다가 마귀와 결탁하는 걸음을 걷는 자가 되지 않도록 구원의 진리만을 쫓아가는 십자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건물’을 가리키며 ‘성전’이 무너질 것을 말씀합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사 56:7)에 따르면 ‘성전’은 ‘기도하는 처소’입니다. 그리고 (렘 7:2)과 (렘 26:2)에 따르면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집’입니다. 이런 ‘성전’을 가리켜 예수님께서는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릴 것”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성전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모형’으로 존재했던 ‘성전 건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한 ‘십자가’로 완성을 이루었기에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며,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었을 때였습니다. (마 27:51)과 (막 15:38)에 따르면, 그때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집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막혔던 담과 같은 ‘막’이 제거 됩니다. 이제 ‘성소’는 ‘기도하는 처소’가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집’은 될지 몰라도 더 이상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죄 사함”의 역할은 감당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구원의 진리’인 ‘십자가 복음’으로 교회를 지키고, 성도들은 신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무너질 형식과 방법을 따르다가 마귀와 결탁하는 무너질 걸음을 걷는 자가 되지 않도록 ‘구원의 진리’만을 쫓아가는 ‘십자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 장차 이루어질 사실에 대해 과학이나 유명한 사람의 말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말씀만을 따라가는 십자가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하심으로 ‘성전’은 인간의 죄를 사하는 곳이 아니라 ‘건물’로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건물’이 A.D. 70년, 디도에 의해 무너짐을 당합니다. (계 20:11~15절)과 (계 21장)과 (22장)은 ‘백보좌 심판대’에서 일어날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지옥의 불못’에 그리고 ‘십자가로 구원받은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인 ‘새 예루살렘’이라는 ‘천국’에서 거할 것을 말씀합니다.
성경은 장차 이 땅에서 일어날 종말에 관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과학이 증명하지 않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든지,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더 우선하여 성경이 말하는 사실을 거부하고,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사실조차 예언하고 있습니다. (계 13장)에 의하면 ‘거짓된 말씀’으로 그리고 ‘이적’을 일으키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마 24:4)과 (5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유명한 사람의 말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말씀만을 따라가는 십자가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예수 그리스도가 이룬 십자가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선한 행위를 통한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무너진 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라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감동 감화시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무너진 돌’이 있을 뿐입니다. 종말을 죄악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과학을 앞세운 자연적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무너진 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아래로 모여들기를 힘쓰는 십자가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무너질 형식과 방법을 따르다가 마귀와 결탁하는 걸음을 걷는 자가 되지 않도록 ‘구원의 진리’만을 쫓아가는 십자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장차 이루어질 사실에 대해 과학이나 유명한 사람의 말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말씀만을 따라가는 십자가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