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금요일) - 증언하는 부활의 증인(행 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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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금) | 행 26장 1~8절 | 증언하는 부활의 증인 |
26: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6: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26: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26: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26: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26: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26: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26: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도입)
사도 바울을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는 당파로 분쟁 가운데 놓인 고린도 교회를 향해 서신을 보낼 때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이와 같이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됩니다. 로마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총 다섯 번 부활의 증인으로 증언합니다. 시작은 유대 군중들 앞에서(행 22:1~22)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에서(행 23:1~6), 로마 정부에서 파송된 벨릭스 총독(행 24:10~21)과 후임으로 예루살렘을 다스렸던 베스도 총독(행 25:6~12) 앞에서, 다섯 번째는 유다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아그립바(행 26장 1절 이하) 앞에서 부활의 예수를 증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변명과 핑계를 대며 탈출구를 찾은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향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주님을 증언합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자는 그 또한 부활에 이른다는 확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죽음이 공포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당하기 전 분봉왕 아그립바 앞에서 행한 그의 증언을 통해 부활의 주님에 대해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분별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영혼들을 향해 무엇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할까요?
(1~2) 영적 흑암 가운데 놓인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적대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기회가 허락되면 주저함과 망설임 없이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사로잡힌 바울이 로마 압송을 앞두고 벌어진 변론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변명을 펼치지 않습니다. 아그립바를 비롯한 청중들에게 예의를 표하며 변론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사로잡힌 자가 된 것을 불행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었던 자신이 어떤 이유로 예수를 구세주로 믿게 되었는지 이것을 부활의 논점에서 변증합니다. 돈을 주고도 만들 수 없는 좋은 기회를 맞이한 바울의 내면은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사로잡히게 만들어 부활의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하는 자리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로 하여금 불신앙 가운데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깨우고 부활의 복음을 확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을 악한 자들에게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그리고 공개적인 변론을 하도록 만듭니다.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는 달리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은 아그립바 왕을 대상으로 부활을 증거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깁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진행되었던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영적 흑암 가운데 놓여 있을지라도 이 또한 하나님께서 잠정적으로 허용하심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또한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영적 흑암 가운데 놓인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적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계 11:3)에 의하면 ‘둘째 화’라고 일컫는 강력한 여섯 번째 나팔 재앙이 임할 때 하나님께서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와 같은 ‘두 증인’을 세워 ‘천이백육십 일’ 복음이 전해지도록 합니다. 영적 흑암 가운데 놓인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적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절망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바울처럼, 종말의 두 증인처럼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런 기회가 오면 바울처럼 주저함과 망설임 없이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맙시다.
(3~7) 부활의 주님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세상 앞에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부활의 주님을 망설임 없이 증언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심문받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차분하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자신은 모세의 율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 탁월했음을 증명합니다. (행 5:34)과 (행 22:3)에 의하면 바울은 존경받은 율법교사이며, 공회원이었던 ‘가말리엘’의 문하에 있었습니다. 자신은 율법과 전통에 대해 엄격히 교육받은 바리새인이었음을 증거합니다. 이런 자신이 어떻게 해서 예수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는지 증언합니다. 자신이 예수를 증언하는 것은 율법과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의 성취를 알리는 것임을 밝힙니다. 열두지파를 거론하면서 메시아의 도래와 부활은 하나님께서 이미 계시하신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의 실현이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진리와 예언의 성취 앞에 자신이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했으니 이것이 참으로 부당하다고 변론합니다.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7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오실 메시아를 간절히 소망했던 이들이 자신들의 편견으로 메시아를 부인합니다. 심지어 여기에 대한 증인들을 경멸합니다. (딤전 3:7)의 말씀처럼 마귀의 올무에 빠진 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뜻을 이루는 일에 그 입이 열리고 앞장섭니다. 이런 세상이 부활의 주님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용납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세상을 향해 바울처럼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부활의 주님을 망설임 없이 증언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8)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어떤 환경과 어떤 여건 속에서도 망설임 없이 진리를 증언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을 고소한 유대인들을 가리켜 ‘당신들’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에 대해 무지한 그들을 오히려 고소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자신을 고소한 유대인들이라고 변론합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성이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행 17:32)에 의하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과 논쟁하던 자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하고, 어떤 사람은 다음 날 다시 논쟁하자고 말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사람의 능력 가운데서 판단하고, 해석합니다. 그러니 부활은 망상이었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지워버립니다. 이러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고 있고, 이러면서 하나님을 운운하며 자신을 고소했으니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변론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고소한 유대인들의 신앙 없음을 지적합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8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창 3:15)에서 말하고 있는 언약의 완전한 성취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과 어떤 여건 속에서도 부활에 대한 확신의 신앙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해 망설임 없이 진리를 증언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예수님의 부활은 (창 3:15)의 언약의 성취입니다. 이런 부활은 (고전 6:14)에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자연적이거나 어떤 조건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 가운데 놓인 우리를 향한 예표요, 실질적인 연합의 상태가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생과 복락이 기다려지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누리게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부활을 증언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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