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수요일) - 전투하는 영적 전사(행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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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수) | 행 17장 1~9절 | 전투하는 영적 전사 |
17: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17: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17: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17: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17: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17: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도입)
이방인의 사도로 활동했던 바울은 짧은 시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두 가지를 선택합니다. 하나는 복음을 대도시 중심으로 전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유대인들의 활동 중심이었던 회당이 주 무대가 됩니다. (행 16:13)에 따르면 유대인의 회당이 없는 곳에서도 바울의 복음 증거는 멈추지 않습니다.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유대인들이 ‘기도처’를 만들어서 모이곤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곳까지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전투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바울이 전투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장소 가운데 하나였던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빌립보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160km 정도 떨어진 지역이었습니다.
바울은 성령이 인도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거침없이 그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복음을 전하기에 전략적 요충지라고 말할 수 있는 데살로니가는 고대 로마의 문인이면서 철학자요, 변론가요, 정치가였던 키케로가 “우리 영토의 심장부”라 일컬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은 마치 전장에 서 있는 전사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지 가운데 하나였던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는 바울의 모습은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험악하고, 영적으로 흑암의 막에 가려져 있는 이 시대 앞에 어떤 영적 전사의 모습을 가져야 할까요?
(1~4)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보게 하고, 듣게 하는 사역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며 영혼들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마게도냐 지방의 심장부라고 말할 수 있는 데살로니가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이로 인해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면서 ‘회당’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신앙과 삶을 이뤄갑니다. 바울은 이런 동족의 모습을 관망하지 않습니다. 이방인 선교를 진행하던 중에도 바울은 동족이었던 유대인의 복음화를 잊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회당’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말씀을 강론합니다. 그는 구약성경이 의미하는 바를 자의적 해석이 아니라 성경을 쫓아 하나하나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는 구원에 따른 두 가지의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는 자신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구세주였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두 번째는 그 예수는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다른 이유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증거합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바울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정곡을 찌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복음의 핵심이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혈통은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개종하였던 ‘경건한 헬라인’과 데살로니가에서도 권력층에 속하는 ‘귀부인’이 유대교를 떠나는 개종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증거했던 복음의 핵심은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복음이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이 아니라, 유대인화가 되어서 구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혈통이기 때문에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창 1:26)에서 ‘아담’은 “옛 창조의 머리”였다면 (고후 5:17~18)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으로서 “새 창조의 머리”가 됩니다. ‘아담’이 인류의 조상으로 우리의 머리가 되고, 우리의 머리로서 언약을 맺었다면 ‘그리스도’는 ‘첫째 아담’이 범한 죄를 대속할 ‘둘째 아담’으로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인 ‘예수’였습니다. 그분은 대속의 제물이 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사역을 전략적으로 매우 잘 펼쳐나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역을 잘 파악했고, 회당이라는 장소를 적절하게 잘 사용하여 복음을 매우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증거한 복음의 능력은 전략적 선택이라는 부설물에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바른 가르침을 통해 일어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진리의 바른 가르침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사람들의 영안과 영적으로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바울처럼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영혼들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진리의 바른 가르침으로 이 시대 앞에 세워진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5~7) 선동을 일삼으며 복음의 전진기지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마귀의 무리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자세로 자신 있게 복음을 전하는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증거한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복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적잖은 충격에 빠집니다. 이 진리의 말씀에 깨달음을 가진 사람들이 유대교로부터 개종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대해 유대인들이 민감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매우 흥분된 상태에서 바울의 일행에게 대항합니다. 사람들을 선동하며 불량한 자들까지 동원하여 소요를 일으킵니다. 바울과 실라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행동을 취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5절)
바울과 실라를 사로잡지 못한 이들은 ‘야손’과 ‘믿음의 형제들’을 그 집 안에서 붙잡아 법정에 넘기면서 두 가지의 실효를 거두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복음 속에는 로마의 통치를 따르지 않겠다는 로마제국을 거역하는 반역이 내포되어 있다는 선동을 통해 로마 정부의 대적이 되게 합니다. 두 번째는 이들이 붙잡혀가는 장면들을 보면서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믿음을 포기하도록 만들며,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공포심을 심어 그 싹을 아예 잘라버리는 효과를 노립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돌아봅시다. 선동을 일삼으며 복음의 전진기지를 무너뜨리려는 적그리스도 세력이 즐비하게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 앞에 강력한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의 어떤 위협적인 공격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자세로 자신 있게 복음을 전하는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8~9) 영적으로 볼모 상태에 놓여 있는 현실 앞에서도 포기가 아니라 그 길과 방향을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새롭게 그리고 중단 없이 펼쳐나가는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선동에 의해 ‘야손’과 ‘형제들’이 사로잡힌 자와 같이 됩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관리들은 유대인들의 거짓된 선동으로 바울과 실라의 일행에 대해 분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증거하는 바울의 일행에 대해 로마제국을 배반하여 ‘자기 왕국’을 세워가는 세력으로 몰아갔던 겁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하는 복음을 정치적, 군사적 폭동과 반역을 일으키도록 만드는 하나의 지령으로 만들어갑니다.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8절) 그러나 이미 사라진 바울과 실라의 일행을 체포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관리들은 ‘야손’과 ‘형제들’을 풀어주면서 조건을 제시합니다.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9절)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었다는 것은 조건을 달아서 이들을 풀어줬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조건은 로마 정부를 혼란에 빠뜨리는 세력으로 여겨졌던 바울과 실라의 일행을 절대로 돕지 않겠다는 것이며, 만약 이것을 어겼을 때는 강력한 처벌이 주어질 것을 담보로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기록했던 (살전 3:17~19)을 보면 여기에 대해 중요한 언질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영적으로 볼모 상태에 놓여 있는 현실 앞에서도 우리는 포기를 선언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나는 길이 막히니 바울은 서신을 통해 그들을 계속해서 영적으로 만나고,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볼모 상태에 놓여 있는 현실 앞에서도 포기가 아니라 그 길과 방향을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새롭게 그리고 중단 없이 펼쳐나가는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육로의 길이 막혔다면 하늘의 길을 돌아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이 진리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런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적인 눈이 떠지고, 영적인 귀가 열립니다. 바울은 영혼들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영적 전사였습니다. 선동을 일삼는 자들에 의해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이 막히자 서신을 통해 데살로니가 사역을 계속해서 펼쳐나갑니다. 영적으로 볼모의 상태에 놓여 있는 현실 앞에서도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그 길과 방향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영적 전사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귀와 영적 전투를 벌리고 있습니다. 마귀는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적 그리스도화’를 강력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영적 전투 속에 포기는 곧 잡아먹히는 역사로 그 모습이 나타납니다. (약 4:7)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는 대적해서 싸워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 모두 전투하는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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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생활의 편리함을 주지만
영적으로 병들어가는 환경과 요소들이 삶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악하고 악한 지금의 이 시대에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더 큰 세력을 확장시키고
전도하는 현장의 거리에서 마주치는자들은 기존 정통 교회가 아니라
이단들의 세력들이 우는 사자의 마귀처럼 달려드는 세상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전투하는 영적 군사가 되지 않는다면
우는 사자의 마귀에게 잡혀먹힘을 당할 수 밖에 없기에
말씀과 기도로 영적으로 무장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섬기는 그리심 교회는 바른 말씀과 진리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문화를
흘려보내는 교회로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다보니
교회의 홈페이지는 늘 이단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고
QR명함전도를 하다보니 이단들의 집중 설문지 공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진리의 말씀에 이단들은 거짓으로 유혹하고 포장하고 공격하기에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 말씀으로 무장하는 성도의 삶이 되도록
날마다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단들의 공격을 두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의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는 전투하는 영적 군사가 되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보게 하고, 듣게 하는 사역을
적극적으로 펼쳐가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
세상의 영혼들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전투하는 영적 군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도 영적으로 병들어가는 세상을 향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진리의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와 하나님 말씀의 검을 들고 전투하는 영적 군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갈수록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은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고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요소가 우리와 하나님을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며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바울은 직접 갈 수 있는 길이 막히자 서신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접 만날 수 없으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했습니다.
만약 복음을 전하는 일을 정말 중요시했다면, 사명으로 생각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복음을 우선순위에 두지 못한 부끄러운 저의 신앙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며 회개합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영적 전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바울처럼 포기하지 않고 영혼들을 일깨우는 영적 전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Jswoo님의 댓글
Jswoo 작성일
이방인의 사도로 활동 핬던 바울은 짧은 시간 복음을 전하는 두가지 방법을 선택 합니다.
첫번째 대도시 중심적으로 전하는 방법있으며
두번째 유대인들의 활동 중심이었던 회당이 주 무대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보게하고 듣게 하는
사역의 적극적으로 영혼들을 찾아주셨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며 자신의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복음을 전하는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신앙,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