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금요일) - 돌아오게 하라(행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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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금) | 행 11장 19~26절 | 돌아오게 하라 |
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11: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11: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도입)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값과 함께 그에 따른 죽음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사흘 만에 부활합니다. 둘째 아담으로서 인간의 죄를 완전히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간 제자들과 더 시간을 보내시고 하늘로 승천하실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명을 한 가지 남깁니다. 그 사명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대속’을 온 인류를 향해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구원의 복음’입니다. 구원의 십자가를 알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길 잃은 영혼들’이라고 하나님은 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길 잃은 영혼들’을 향해 증거하도록 명합니다. 이것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구원의 백성’인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을 향해 증거하도록 명하고 계십니다. ‘구원의 백성’인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길 잃은 영혼들’을 ‘구원의 복음’을 통해 “돌아오게 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길 잃은 영혼들’을 돌아오도록 명하고 있는 사명 앞에 어떻게 사역을 펼쳐나가야 할까요?
(19~21)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비록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두신 목적이 길잃은 영혼들을 돌아오게 하는 사명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삶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신의 값’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인 ‘길 잃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구원의 복음 증거’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값’입니다. (마 28:19~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길 잃은 영혼들’을 향한 구원의 복음에 따른 ‘지상대위임령’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의 값’이었습니다. 그리고 (행 1:8)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인 ‘예루살렘’과 ‘나라와 민족’을 일컫는 ‘유대’ 그리고 ‘소외된 자들’을 가리키는 ‘사마리아’와 ‘이방인’을 뜻하는 ‘땅 끝까지’,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기까지 끊임없이 전개되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명을 등한시했던 제자들에게 시련이 찾아옵니다. (행 7장)의 스데반 집사의 순교는 장차 임할 제자들을 향한 핍박을 가름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행 8:2~3)의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강력한 핍박은 하나님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그 값’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값’을 통해 제자들에게 명했던 사명을 이뤄가게 합니다.
환난으로 인한 흩어짐은 자신들이 가기를 꺼렸던 ‘사마리아’와 같은 소외된 곳으로 ‘구원의 복음’을 들고 가게 만듭니다. 이방인들의 지역인 ‘땅끝’을 향해 ‘구원의 복음’이 흘러가게 합니다.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말입니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인 헬라인에게까지 ‘구원의 복음’이 증거됩니다. 그 결과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21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비록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곳에 두신 목적이 있고, 이 땅에 두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곳에 세운 목적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에게는 능력도 함께 줍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비록 무너질 것만 같은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두신 목적을 알고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펼쳐나가는 복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2~24) 세속을 쫓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 아래에 머물며 성령과 믿음의 충만한 걸음으로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이방 지역과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다라는 ‘유대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을 통해 중요한 한 가지 일을 결정하게 됩니다. 안디옥 지역에서 자신들을 대신할 일꾼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적 편견’에 그들은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실의 확인과 함께 자신들을 대신하여 ‘길 잃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적임자를 뽑습니다. 이때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어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행 4:36)과 (47절), 그리고 (골 4:10)에 의하면 ‘구브로’ 출신의 레위인이었으며, 마가복음을 기록했던 ‘마가’의 외삼촌인 ‘바나바’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인 ‘밭’을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받쳤고, 자신의 일평생을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불태웠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른 ‘바나바’는 (행 11:24)에 따르면 두 가지 사실이 분명한 자였습니다. 첫 번째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타락한 세상이 주는 부와 쾌락을 쫓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 아래에 머물기를 기뻐하는 ‘착한 자’, ‘레위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속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 받기를 기뻐하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종할 자세가 분명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 34:9)은 ‘여호수아’를 가리켜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일컬었으며, (눅 1:41)과 (67절), 그리고 (행 7:55), ‘엘리사벳’과 ‘사가랴’ 그리고 ‘스데반’을 가리켜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는 것이며, 그 은혜를 나눌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품에서 느낄 수 있는 ‘영적인 따뜻함’과 ‘배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세속을 쫓아가는 방식의 처음은 화려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소망과 희망의 결실의 열매가 아니라 절망이 그 끝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 아래’에 머무는 ‘착한 자’로서 그리고 ‘성령과 믿음의 충만한 걸음’의 사역으로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갑시다. 이런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또 다른 결실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25~26) 자기 헌신과 희생의 걸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길 잃은 영혼들’을 돌이키는 사역을 감당했던 ‘바나바’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주님을 드러내기를 기뻐합니다. 이런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길 잃은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며, 그의 세심한 보살핌은 마치 예수님의 손길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다른 형제들과 나누길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바나바’의 손길이 모두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졌던 ‘바울’을 향합니다. (행 9:27)에 의하면 과거에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 의심하고 있을 때 다메섹에서 그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았다는 사실을 사도들 앞에서 증언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바울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됩니다. 이런 바울을 바나바는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울과 동역을 이루기 위해 바울의 고향인 ‘다소’에까지 헌신과 희생의 발걸음으로 그를 직접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안디옥에 도착하여 함께 가르치고, 복음을 증거하는 동역의 사역을 이룹니다. 이때 ‘길 잃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와 ‘큰 무리’를 이룹니다.
바나바의 ‘자기 헌신’과 ‘희생’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을 받는데 있어서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나바의 ‘자기 헌신’과 ‘희생’은 ‘길 잃은 영혼들’의 ‘큰 무리’가 주께 돌아오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바나바는 이 일에 대해 대가를 원하거나 자신의 위치를 탐하는 일이 없었으며, ‘자기 헌신’과 ‘희생’을 통해 주님의 뜻을 이뤄간다는 그 기쁨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주님의 뜻을 세워나가는 일에 ‘자기 헌신’과 ‘희생의 걸음’을 기뻐하는 십자가 군병이 되어야 합니다. 바나바의 헌신과 희생을 기반으로 한 바울과의 ‘1년의 사역’은 ‘길 잃은 영혼들’의 ‘큰 무리’를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역사를 일으켰던 겁니다. 이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안디옥의 불신자들이 마치 조롱하듯이 예수의 추종자들을 구별하며 ‘그리스도인’이라 칭합니다. (행 11:26)은 증거합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기 헌신과 희생의 걸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힘 있게 펼쳐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곳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모습을 바꾸어야 합니다. 환경에 지배당하는 자가 아니라 환경을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곳에 둔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환경에 쉽게 지배를 받게 됩니다. 주님의 목적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비록 고난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두신 목적을 알고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펼쳐나가는 사명의 길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 아래에 머무는 사람, ‘성령과 믿음의 충만한 걸음’을 걸으며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자기 헌신’과 ‘희생의 걸음’을 기뻐하는 사역의 걸음이 필연적이어야 합니다. ‘길 잃은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지금 이 시간도 우리의 신앙의 양심에 들려지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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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수요일마다 전도를 나가지만 세상 사람들은
복음의 말씀보다는 무언가를 건네는 물품에 관심이 많고
마지못해 전도지를 받으며 지나갑니다
그리심 교회에서 QG명함 전도를 합니다
명함전도지를 건네며 설문을 설명하기도 하며
교회와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냉담한 표정과 싸늘한 눈빛이 세상을 대변하는것 같습니다
전도현장에서 느끼는것은 늘 이단들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리지어 몇팀을 만들어 날마다 적극적으로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이단의 꾀임에 잘 넘어간다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게, 성도에게, 나에게 길잃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기에
환경과 세상을 탓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거리에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며
주께로 돌아오게 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나에게 들려주는 음성인줄 알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지상대위임령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길잃은 한 영혼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그 사명을 감당하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믿음소망사랑님의 댓글
믿음소망사랑 작성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옥같은 죄악에서 벗어났고 다시 지옥 같은 세계로 가지 않게 하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런 진리에 귀를 막고 눈을 감는 모습이 신약과 지금 이 현실과 비교 했을 때
어느 시대가 더 강팍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수요일 QR코드 전도시 한 젊은 아가씨에게 QR명함을 건네면서 설문 조사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폰으로 QR을 찍고 하더니 개인 정보 다 나간다면서 그 자리에서 받았던 전도물품을 바로 돌려 주었습니다.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사실 대학 캠퍼스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전도 방식이
젊은 친구들에겐 이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무기력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을 그려봅니다.
죽도록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은 자신의 능력으로 하지 않고 오늘 본문처럼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였을겁니다. 전도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하고 이단들이 전도하는 사람 쪽 수에 밀릴지라도,
다윗이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나아갔듯이 주님의 귄세와 능력으로 조금도 쫄지 않고 육신이 허락하는 한,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 일에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는 십자가 군병 되기를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주님!!!
Jswoo님의 댓글
Jswoo 작성일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생긴 사람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만듣셨고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주셨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비록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두신 목적이 길 잃은
영혼들을 돌아오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길 잃은 영혼들을 찾아주셨으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도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신앙,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주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로 세상을 핑계 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세상과 환경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신앙으로 세상과 환경의 불의한 요소를 모두 이겨내며 지배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일에 쓰임 받음을 기뻐하는 헌신하는 신앙의 발걸음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사명을 기억하며 환경을 이겨나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