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월요일) - 나의 달려갈 길(행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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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월) | 행 8장 1~3절 | 나의 달려갈 길 |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도입)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였던 예수님의 죽음은 죽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죄에 대한 ‘값’을 말하고 있었다면 죽음이 계속되는 ‘죽음의 상태’는 ‘저주의 값’이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여기에 대한 모든 것의 종결과 답이었습니다. 부활은 저주의 사슬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40일을 더 머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합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 가지 말씀을 남기시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여기서 문제가 불거집니다. 제자들의 유대적 편견에 의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명령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까지만 머물게 됩니다. 계속 이 상태에 머물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를 향해 대핍박 사건이 전개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 역사적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도로서 어떤 길에 서야 하고 어떤 길을 끊임없이 달려가야 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길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어떤 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가르치며,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헤아려가는 영적 분별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충성스럽게 달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은 반드시 실현됩니다. 무한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유한성을 가진 사람의 능력으로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은혜의 열매를 맺어가는 겁니다. (행 1:8),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제자들은 자신들의 유대적 사고와 판단으로 이 말씀의 중간을 잘라버립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향한 언약을 말할 때, 항상 선두에 ‘아브라함’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이런 가운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선민사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세웠던 것이 ‘아브라함의 혈통’과 (창 17장)의 ‘할례언약’과 (출 24장)의 ‘시내산 언약’에 따라 주어진 ‘율법’이 이를 증명한다고 여겼던 겁니다. 이런 유대인들이었기에 제자들 또한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방인이 거하는 곳으로 여겨졌던 ‘땅끝까지’ 증인의 길을 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면 ‘사마리아’는 어떤가요? 역사적으로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에게 세 가지 점에서 치욕을 안겨 준 곳이었습니다. B.C. 722년의 사건이었습니다.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한 북이스라엘은 유대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철저히 짓밟히게 됩니다. 지역적 혼합과 혈통적 혼합, 여기에 더하여 종교의 혼합이 가해집니다. 그러면서 탄생한 것이 ‘사마리아 종교’였습니다. 이런 ‘사마리아’를 유대인들은 부정한 곳으로 여깁니다. (요 4:9)은 여기에 대해 증언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니이까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명령은 유한성을 가진 사람의 머리로 판단하여 결정할 내용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곳에 ‘은혜의 열매’가 있습니다. ‘신 유대리즘’에 빠져들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헤아려가는 영적 분별력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순종을 통해 충성스럽게 달려가는 가운데 ‘은혜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고 기억에 남겨지도록 후회 없는 신앙의 여정을 달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일곱 집사 가운데 복음을 전하며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을 맡았던 스데반 집사가 순교 당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천국에 새겨졌다는 것을 두 현상을 통해 스데반에게 알게 합니다. 첫 번째는 (행 7:55) ‘하늘의 문’을 열어 그의 이름이 천국에 새겨졌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이며 천국의 복음을 증거하는 스데반이 하나님께 기억되었음을 알게 합니다. 이런 스데반은 일곱 집사로 선출될 때에도 (행 6:3~5)에 의하면 공동체로부터 인정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믿음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는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성경은 스데반에 대해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증거합니다. 그는 교회의 신자들만 아니라 일반 유대인들에게도 구약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스데반의 순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판에 새겨집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산헤드린 공회가 금하도록 명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를 증거하다가 당한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슬퍼하는 것은 공회의 판결이 부당했다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항의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판에 새겨진 스데반의 순교는 모든 이로 하여금 산헤드린 공회의 부당함에 저항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는 공동체로부터 영원히 그 이름이 기억에 남겨질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 이름이 남겨지고, 기억됩니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로 기억에 남겨진 토마스 선교사 그는 1839년 영국의 웨일즈에서 목회자였던 로버트 토마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는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1866년 중국에서 대동강으로 입국합니다. 그러나 그는 조선 땅을 제대로 밟아보지도 못하고 27살의 젊은 나이에 복음을 거부했던 조선의 정부에 의해 대동강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야수 믿으세요!” 이 한마디와 그가 전하고자 들고 왔던 성경이 조선을 복음으로 뒤덮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토마스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한국의 역사는 이런 토마스를 기억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께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 사람들에게 기록되고, 기억에 남겨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고 기억에 남겨지도록 후회 없는 삶의 여정을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신앙을 향해 핍박이 가해져 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과 교회를 지켜내며 고난의 길을 주님과 동행하며 달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울이 회심하여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행한 행동이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공회의 명을 받아 교회를 잔혹할 정도로 핍박을 가합니다. 남녀를 따지지 않고 핍박합니다. 바울은 이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딤전 1:15)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임하셨을 때, 나는 죄인 중에 괴수였습니다” 교회를 향한 강력한 핍박은 교회를 뿌리째 흔듭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의 허락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핏값으로’ 세워졌습니다. 세상이 가하는 충격에 잠시 흔들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구원의 백성을 부르기 위해 방주로 택한 교회는 무너짐을 당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남겨두신 ‘말씀의 교회’는 ‘꼴의 양식’을 나눠주는 ‘종말의 처소’이며, ‘방주’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마귀는 종말의 심판을 막아야만 자신의 존재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 24:24)과 (막 13:22)은 “마귀가 두 짐승의 세력을 일으켜 할 수만 있다면 택한 자들도 미혹할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신앙과 교회를 향해 공격할 때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과 뻔한 방법을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그중 하나가 세속화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여기에는 뻔한 방법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이 함께 가미됩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현대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찬양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예배가 되도록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 속에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에 대해 갈등을 느끼게 만드는 분쟁입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판단을 앞세우는 인본주의가 중심을 이룹니다.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말씀과 바른 교리로 자신을 동여매지 않으면 언제, 어떠한 공격이 우리 자신과 교회 공동체를 향해 덮칠지 모릅니다. 신앙을 향해 핍박이 가해져 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과 교회를 지켜내어야 합니다.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귀는 십자가 사건을 일으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을 때 자신의 승리를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마귀를 멸하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주님을 향한 신앙으로 일어나는 고난의 길은 고난의 값이 영광의 열매로 응답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오늘도 고난의 길을 주님과 동행하며 승리의 길을 달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나의 달려갈 길은 어떤 길입니까?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자는 자신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어리석음에 답을 주겠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는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을 알 수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가치와 기준을 어디에 맞추고 있습니까? 가치와 기준을 ‘새 하늘과 새 땅’에 맞추며 자신의 여정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헤아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진정으로 복되게 달려가는 승리의 깃발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달려가는 자였다고 기억되고, 그 이름이 남겨져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에녹처럼, 스데반의 모습처럼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기억 남는 자로 오늘을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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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믿음소망사랑님의 댓글
믿음소망사랑 작성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로 알고 있는 토마스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가 27세라는 그렇게 젊은 나이인 줄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27세라는 숫자를 다시 한 번 더 곰곰히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떻게 그 나이에 자신의 나라도 아닌 멀고도 먼 이방나라에 복음을 위해 올
생각을 했는지.....지금처럼 모든 것이 발달되어
교통편도 정보도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던 시대이었건만.....
참으로 세례요한이 예수의 발꿈치 때 만도 못하다고 자신을 고백했다면 나의 신앙은 감히 예수가 아니라,
인간인 토마스 선교사의 발꿈치의 때 만도 못한 적당주의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핍박이 가해져 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달려간 스테반, 사도 바울, 토마스들은
그들 자신만을 위한 걸음이 아니었음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앞으로 예배도 자유롭지 못하고 전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적 전쟁 시대에
다양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교회 공동체 사역에 동참하고 동역하는 것이
바로 나의 달려갈 길임을 잊지않는 성도가 되어 나이 핑계 대지않는
열심을 다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개척하고 16년의 시간들은 내가 달려가야할 길이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그 시간들을 감당하고
또 감당하며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들은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말할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조차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결하시고
또 다른 은혜와 감동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지키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부족하지만 열심히 달려가고자 합니다
주의 일을 감당하도록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오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달려가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며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며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기억 남는 자로 달려가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한 주를 시작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신앙을 점검해 봅니다.
이따금 신앙이 흔들리 때가 있습니다. 세상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세상의 것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나도 세상 사람들처럼 되고 싶을 때, 눈앞에 놓인 문제와 신앙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과 내가 겪은 경험으로 판단하고 해결하려 할 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바른 교리로 신앙을 바르게 세워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세상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믿음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헤아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주님을 향한 신앙을 흔들림 없이 바르게 세워나가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Jswoo님의 댓글
Jswoo 작성일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였던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자가운데서 살아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을 이어 영적 분별력으로 자신의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지켜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신앙,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